에쿠니 가오리 《반짝반짝 빛나는》 — 그래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20년 만에 《울 준비는 되어 있다》를 다시 읽고 나니, 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에게 다시 한번 완전히 빠져버렸습니다. 스무 살 때는 몰랐던 것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던 그 경험이 계속 마음에 남아서, 이번엔 그녀의 다른 작품도 제대로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손이 간 책이 그녀의 초기 대표작이자 데뷔 시절부터 화제를 모았다는 《반짝반짝 빛나는》이었습니다.

알코올 중독인 아내와 동성애자인 남편, 그리고 남편의 애인까지 세 사람이 얽힌 결혼 생활이라는 설정부터가 파격적이었습니다. 20년 전의 저였다면 아마 이 설정 자체를 신기해하는 데 그쳤을 것 같은데, 지금은 이 관계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오늘은 줄거리와 등장인물, 그리고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제목이 상징하는 의미까지 제가 직접 읽고 느낀 감상을 바탕으로 정리해보려 합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

정서불안과 알코올 중독을 겪는 여성과 동성애자 남성이 서로의 사정을 모두 알고도 결혼한다는 설정 자체가 낯설면서도 강하게 끌렸습니다. 이 결혼이 세상의 눈으로 보면 비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정작 그 안에 있는 두 사람에게는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했습니다.

또한 에쿠니 가오리가 초기에 ‘남자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별칭으로 불렸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에서 확인했던 절제되고 담담한 문체가, 이렇게 파격적인 관계 설정 속에서는 또 어떤 결로 드러날지 확인해보고 싶어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간략한 줄거리

쇼코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알코올에 의존하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소아과 의사인 무츠키와 서로의 사정을 다 알고 합의하에 결혼합니다. 무츠키는 게이지만 오랜 연인인 곤과의 관계를 정리하지 않은 채로 쇼코와 부부가 되고,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신혼부부처럼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무츠키의 연인인 곤이 두 사람의 삶에 점점 더 깊이 들어오게 됩니다. 곤은 자유분방하고 다소 제멋대로인 성격으로, 부부의 집을 스스럼없이 드나들며 세 사람만의 독특한 생활 방식이 자리를 잡아갑니다. 처음엔 서로 배려하며 균형을 맞추던 이 관계는, 양가 부모님이 이 결혼이 그저 평범한 부부 사이가 아니라는 걸 눈치채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특히 아이를 갖는 문제를 둘러싸고 양가의 기대와 세 사람의 현실 사이에 간극이 벌어지고, 무츠키가 아내를 위해 다른 남자를 소개해주려 하는 등 예상치 못한 시도들이 이어지면서 이 관계는 점점 더 복잡한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세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면서도, 동시에 이 관계가 사회적 통념과 부딪히는 순간마다 크고 작은 균열을 마주합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스스로도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감정들 사이에서, 세 사람은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며 함께 살아갑니다.

주요 등장인물 정리

  • 쇼코 : 정서불안과 알코올 의존 증세를 지닌 여성. 사회적 부적응자에 가깝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주변 사람들과 유대를 맺으려는 주체적인 인물입니다.
  • 무츠키 : 쇼코의 남편이자 동성애자.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쇼코와의 결혼 생활을 함께 지켜가려 합니다.
  •  : 무츠키의 연인. 자유분방하고 다소 제멋대로인 성격으로, 부부의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이 독특한 관계의 세 번째 축을 이룹니다.

핵심 주제

상식 밖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족

이 소설은 이성애와 동성애라는 익숙한 이분법을 벗어나,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는 세 사람이 함께 가족을 이루는 모습을 그립니다. 이들의 동거는 누군가에게는 상실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세 사람 모두에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정’을 얻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가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우리는 흔히 정해진 설계도를 상상합니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이들로 채워지는 하나의 완성된 도면 같은 것 말이지요. 그런데 이 소설 속 세 사람은 그 설계도를 따르는 대신, 각자 조각난 재료들을 가지고 자신들만의 구조물을 새로 지어 올립니다. 무츠키는 아내라는 존재와 연인이라는 존재 중 하나를 포기하지 않았고, 쇼코 역시 완전한 이성애적 결혼이라는 틀을 포기하는 대신 자신에게 맞는 방식의 안정을 선택했습니다. 정해진 설계도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들에게는 자유였던 셈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뼈대가 어긋나 보일 수 있는 이 구조물이, 정작 그 안에 사는 세 사람에게는 누구보다 편안하게 몸을 누일 수 있는 집이 되어준다는 사실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에 남았습니다. 완성된 도면 위에 지어진 집만이 진짜 가정은 아니라는 것, 오히려 자신에게 맞게 새로 설계한 구조가 더 오래 버틸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은 조용히 보여줍니다.

애정과 신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결합

흥미로운 점은 이 세 사람의 결합이 절실한 사랑의 맹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선택과 필요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며 그 안에 진짜 유대와 배려가 자라난다는 사실이, 사랑이란 반드시 정형화된 방식으로만 시작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접목한 나무가 떠올랐습니다. 서로 다른 두 나무를 붙여 하나로 자라게 하는 접목은 처음부터 하나의 씨앗에서 시작된 게 아닙니다. 필요에 의해, 혹은 우연한 계기로 이어붙여진 두 그루가,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 하나의 나무처럼 뿌리와 수액을 공유하며 자라나는 것이죠. 쇼코와 무츠키의 결혼도 이와 비슷합니다. 뜨거운 사랑의 맹세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기 위한 실용적인 선택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함께 지낸 시간이 쌓이면서, 그 실용적인 결합 위에 예상치 못한 진짜 애정과 배려가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처음의 동기가 순수한 사랑이 아니었다고 해서, 그 관계가 나중에 자라나는 진심마저 가짜로 만드는 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시작이야 어떻든, 함께 쌓아온 시간과 서로를 향한 배려가 결국 그 관계를 진짜로 만든다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줍니다. 사랑이 반드시 첫 순간부터 완전한 형태로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 소설은 조용히 다른 답을 제시하고 있는 셈입니다.


특징

완곡하고 절제된 감정 묘사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인물들의 격렬한 감정 변화를 직접적으로 서술하는 대신, 유리잔 속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 같은 사소한 디테일로 은근하게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특별히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데도 독자가 그 감정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 이 작가 특유의 문체입니다.

술이라는 매개체가 만들어내는 분위기

이 소설에는 민트 줄렙 같은 칵테일이 인상적인 장면마다 등장합니다. 술이라는 소재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들의 불안하고 흔들리는 감정 상태를 은유하는 장치로 기능하며, 소설 전체에 독특한 분위기를 더합니다.


해석 — 왜 ‘반짝반짝 빛나는’일까, 그리고 ‘은사자’는 누구인가

이 소설에는 은사자라는 인상적인 비유가 등장합니다. 극단적으로 색소가 희미해서 일반적인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자기들끼리만 공동체를 이루는 희귀한 사자를 뜻합니다. 쇼코는 남편 무츠키와 그의 연인 곤, 그리고 주변의 몇몇 인물들을 이 은사자에 빗댑니다.

이 비유가 인상적인 이유는, 은사자가 무리에서 쫓겨난 낙오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저 색이 다를 뿐, 그들 나름대로 아름답고 순수한 존재입니다. 다만 세상의 평범한 기준과 속도에 맞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자신들과 닮은 존재들끼리 모여 살아갈 뿐입니다. 쇼코, 무츠키, 곤이 이루는 이 독특한 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사회가 정해놓은 결혼과 사랑의 틀에서 벗어나 있지만, 그렇다고 결핍된 존재는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알아보고 모여든, 색이 다른 사자들의 공동체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제목의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표현은 이 은사자들이 지닌 빛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흔한 무리 속에서는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었던 그 희미한 색이, 서로 닮은 존재들끼리 모였을 때 오히려 선명하게 반짝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완벽하게 사회의 기준에 들어맞지 않아도, 자신과 닮은 사람들 곁에서는 오히려 더 밝게 빛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이 소설의 제목과 은사자 비유가 함께 전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이 작품 전체를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무리에서 벗어난 존재들도,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 비로소 반짝일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쇼코, 무츠키, 곤은 각자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적인 결혼이나 사랑의 틀에는 맞지 않는 은사자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찾아냅니다. 이 소설은 그런 비전형적인 결합에도 분명히 존재하는 진심과 유대를,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고유한 빛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정리

사회가 정해놓은 정상적인 사랑이나 가족의 형태에 자신이 온전히 들어맞지 않는다고 느껴본 사람이라면, 이 소설 속 세 사람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런 관계를 특이하다고 손가락질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관계 안에도 분명히 존재하는 배려와 진심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정형화된 틀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용한 지지를 보냅니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다고 해서 반드시 외로운 존재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 오히려 닮은 존재들끼리 모였을 때 더 선명하게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줍니다.


내 생각과 감상평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은사자라는 비유였습니다.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부족하거나 어긋난 존재로 보일 수 있는 이들을, 그저 색이 다를 뿐인 아름다운 존재로 바라보는 이 시선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 소설은 세 사람의 관계를 특별히 미화하지도, 비극적으로 그리지도 않습니다. 그저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인데, 그 담백함이 오히려 이 관계를 더 진솔하게 느껴지게 만들었습니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에서 느꼈던 절제된 문체가 이 소설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걸 확인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관계도, 심지어 세상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관계라 해도, 그 나름의 방식으로 충분히 빛날 수 있다는 이 소설의 태도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 책 다음에 읽으면 좋은 책

  • 《울 준비는 되어 있다》(에쿠니 가오리) : 사랑의 끝자락을 다룬 단편집으로, 이 작가의 절제된 문체를 먼저 확인한 작품입니다.
  • 《냉정과 열정 사이》(에쿠니 가오리·츠지 히토나리) :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에쿠니 가오리의 대표작으로, 전통적인 연애 서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하느님의 보트》(에쿠니 가오리) : 방랑하는 모녀의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형태의 가족과 사랑을 다룬 작품입니다.

마치며

《반짝반짝 빛나는》은 상식적인 틀에 맞지 않는 세 사람의 결합을 통해, 무리에서 벗어난 존재들도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 비로소 반짝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정형화된 관계의 틀 안에 자신이 온전히 맞지 않는다고 느껴본 분이라면, 이 소설이 건네는 담담한 위로에 공감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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