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모 《절창》 — 타인이라는 텍스트는, 오독 없이는 읽을 수 없다

《아버지에게 갔었어》까지 이어온 한국 소설 읽기를 계속하다, 이번엔 요즘 가장 화제가 되고 있다는 구병모의 신작 《절창》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파과》로 단단한 서사 장악력을, 《네 이웃의 식탁》으로 예리한 시대 감각을 보여줬다는 이 작가가, 이번엔 타인의 상처를 만지면 그 기억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궁금했습니다. 오늘은 줄거리와 등장인물, 그리고 ‘절창’이라는 제목이 담고 있는 의미까지 제가 직접 읽고 느낀 감상을 바탕으로 자세히 정리해보려 합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

타인의 상처를 만지면 그 사람의 기억과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자라는 설정 자체가 강렬했습니다. 흔히 이런 능력을 가진 인물은 그 힘으로 좋은 일을 하는 쪽으로 그려지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정반대로 그 힘이 타인의 욕심에 이용당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묻는다는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바로 끌렸습니다.

또한 이 소설이 화자인 ‘나’의 진술에만 전적으로 의지해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 그리고 그 진술 자체가 이미 필연적인 왜곡을 전제하고 있다는 설명도 흥미로웠습니다. 타인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근본적으로 오독을 피할 수 없다는 이 소설의 문제의식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간략한 줄거리

보육원 출신으로 자란 ‘아가씨’는 어릴 적부터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타인의 상처, 즉 몸에 남은 흉터나 마음의 아픔을 만지면 그 사람이 지닌 기억과 감정을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그녀에게 축복이라기보다 오히려 감당하기 힘든 짐에 가까웠는데, 소설이 진행되며 이 능력을 눈여겨본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문오언이라는 남자입니다. 오언은 아가씨의 이 특별한 힘을 자신의 이익과 욕심을 채우는 데 이용하려 하고, 아가씨는 그런 그의 저택에 들어가 머물게 됩니다.

이야기는 오언의 저택에서 아가씨에게 독서를 가르치기 위해 입주하게 된 독서 교사 ‘나’의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이 화자는 아가씨와 오언, 두 사람이 어떻게 얽히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저택 안에서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들려줍니다. 그런데 이 화자의 진술에는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가씨가 오언을 찾아가기 전까지 처했던 상황을 이야기할 때, 화자는 하나의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두 가지 서로 다른 버전을 나란히 제시하며 독자에게 되묻습니다. “어느 쪽의 이야기가 더 그럴듯하고 그들에게 어울립니까?” 이런 서술 방식을 통해 소설은 아가씨와 오언 사이에서 벌어지는, 언어로 쉽게 정의 내리기 어려운 기이한 관계를 서서히 펼쳐 보입니다. 오언은 그녀의 능력을 이용하려 했던 인물이지만, 그 관계는 단순한 착취나 지배로 끝나지 않고, 미움과 끌림, 지배와 종속이 뒤엉킨 복잡한 감정으로 발전해갑니다. 독자는 이 모든 이야기를 오직 화자 한 사람의 시선을 통해서만 전달받기에, 그 시선 자체에 얼마나 많은 왜곡과 해석이 개입되어 있는지를 계속 의식하며 소설을 읽어나가게 됩니다.

주요 등장인물 정리

  • 아가씨 : 이 소설의 주인공. 보육원 출신으로, 타인의 상처를 만지면 그 사람의 기억과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능력 때문에 오언에게 이용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 문오언 : 아가씨의 능력을 자신의 욕심을 위해 이용하려는 인물. 소설 안에서 직접적인 목소리(대사)가 주어지지 않는 독특한 방식으로 그려지며, 이름의 뜻은 한자로 ‘글자 모양이 비슷해서 틀리기 쉬운 글자’를 의미합니다.
  • 나(독서 교사) : 이 소설의 화자. 오언의 저택에 입주해 아가씨에게 책을 가르치며,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독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다만 이 화자 자신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이 갈리는 인물입니다.

핵심 주제

타인을 읽는다는 것은, 오독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이 던지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가씨는 문자 그대로 타인의 기억과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초능력자이지만, 그런 그녀조차도 결국 완전한 이해에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이건 마치 번역이 불가능한 언어로 쓰인 시를 옮기려는 시도와 비슷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번역가라도, 원어의 뉘앙스와 정서를 100퍼센트 그대로 옮길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어딘가에서는 원래의 의미가 손실되거나 왜곡됩니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우리의 모든 시도도 이와 비슷하다고 이 소설은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심지어 상대의 기억을 직접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그 이해에는 필연적으로 나의 시선과 해석이 개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타인이라는 존재는 결코 완벽하게 해독할 수 있는 텍스트가 아니며, 우리는 그 오독의 가능성을 끌어안은 채로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능력이 축복이 아니라 착취의 통로가 될 때

아가씨의 능력은 본래 그녀 자신의 것이지만, 오언이라는 인물을 만나면서 그 능력은 오히려 그녀를 옭아매는 도구가 됩니다. 타고난 재능이나 특별함이 반드시 그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이 소설은 보여줍니다.

이는 마치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새가 그 목소리 때문에 오히려 새장에 갇히게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새의 노래는 본래 자유로운 날갯짓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아름답지만, 누군가 그 노래만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면, 그 재능은 오히려 새를 가두는 이유가 되어버립니다. 아가씨의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가 타인의 상처를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은, 그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언의 욕망을 위한 도구로 전용됩니다. 작가는 이 설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의 재능이나 특별함이 종종 그 사람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이익을 위해 소비되는 현실을 은유적으로 비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징

목소리를 갖지 못한 인물, 오언

이 소설의 가장 독특한 형식적 특징은 오언이라는 인물에게 직접적인 목소리, 즉 대사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오직 화자의 진술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그려질 뿐, 스스로 말하는 장면이 없습니다. 이 서술 전략은 오언이라는 인물 자체를 하나의 텍스트, 즉 다른 사람의 해석을 거쳐야만 접근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의 이름이 뜻하는 ‘글자 모양이 비슷해서 틀리기 쉬운 글자’라는 의미와도 절묘하게 맞물리는 설정입니다.

어절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이어 붙이는 문체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충분히 오랜 시간 고민하며 한 어절, 또 한 어절을 신중하게 이어 붙였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실제로 이 소설의 문장은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 밀도 높고 정교하게 조탁된 언어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런 문체 자체가 독자에게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 소설의 주제를 체험하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해석 — 왜 하필 ‘절창(切創)’일까

이 소설의 제목인 ‘절창’은 한자로 베일 절(切), 다칠 창(創)을 써서 ‘베인 상처’, 즉 자상이나 열상을 가리키는 의학 용어입니다. 소설의 중심 소재인 ‘상처를 통한 읽기’와 정확히 맞닿아 있는 제목입니다.

이 제목이 흥미로운 건, ‘절창’이 은유가 아니라 지극히 임상적이고 건조한 의학 용어라는 점입니다. 시적이거나 낭만적인 단어가 아니라, 상처를 객관적으로 지칭하는 냉정한 이름을 제목으로 택했다는 것 자체가 이 소설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아가씨가 읽어내는 것은 아름답게 미화된 감정이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상처와 고통입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통해서만 열리는 이해라는 것은, 결코 편안하거나 낭만적인 방식으로 오지 않습니다. ‘절창’이라는 제목은 그러니까, 타인을 이해한다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상처를 매개로 해야만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 이해의 과정 자체가 고통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이 작품 전체를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타인이라는 영원한 텍스트는 오독을 전제하지 않고는 결코 읽어낼 수 없으며, 그럼에도 우리는 그 불가능성 앞에서 계속 읽기를 시도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가씨의 초능력조차도 완전한 이해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화자인 독서 교사의 진술 역시 필연적으로 왜곡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타인을 완벽하게 읽어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 불가능성 자체를 포기의 이유로 삼지 않고 계속해서 읽기를 시도하는 행위, 그 자체에 의미를 둡니다.


정리

누군가를 이해하려 애썼지만 결국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느껴본 경험, 혹은 자신의 재능이나 특별함이 오히려 자신을 옭아매는 상황에 놓여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들이 낯설지 않게 다가올 것입니다.

이 소설은 완벽한 이해나 소통이라는 이상을 손쉽게 약속하지 않습니다. 대신 오독이라는 한계를 정직하게 인정한 채로, 그럼에도 타인에게 다가가려는 시도 자체가 지닌 가치를 담담하게 짚어냅니다.


내 생각과 감상평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 소설이 독자에게도 끊임없이 판단을 유보하게 만든다는 점이었습니다. 화자가 제시하는 두 가지 버전의 이야기 중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운지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순간마다, 저 역시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이야기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계속 되묻게 됐습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결코 쉽게 읽히지 않아서, 속도감 있게 페이지를 넘기기보다는 천천히 곱씹으며 읽어야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그 밀도 높은 문체 덕분에 오히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감각을 몸으로 체험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특히 오언이라는 인물에게 끝까지 직접적인 목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설정이 계속 마음에 남았습니다. 우리가 관계 속에서 누군가를 판단할 때, 실은 그 사람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해석과 진술을 통해서만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새삼 돌아보게 됐습니다.


이 책 다음에 읽으면 좋은 책

  • 《파과》(구병모) : 같은 작가의 대표작으로, 단단한 서사 장악력을 먼저 확인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 《네 이웃의 식탁》(구병모) : 시대를 감지하는 예리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이 작가의 또 다른 결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 《보기왕이 온다》(사와무라 이치) : 신뢰할 수 없는 화자와 진실의 모호함을 다룬다는 점에서, 함께 읽으면 흥미로운 비교가 됩니다.

마치며

《절창》은 타인의 상처를 읽어내는 능력을 지닌 인물을 통해, 우리가 타인을 이해한다는 행위가 근본적으로 오독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정교하고 밀도 높은 문장으로 그려낸 소설입니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려다 결국 그 한계를 마주해본 적 있는 분이라면,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들에 깊이 몰입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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