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탁 《곰탕》 — 잃어버린 맛을 찾아, 시간을 거슬러 오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까지 무거운 사회파 소설들을 이어 읽다 보니, 이번엔 결이 다른 장르소설을 하나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손이 간 책이 카카오페이지에서 50만 독자를 사로잡았다는 김영탁 감독의 첫 장편소설 《곰탕》이었습니다. 영화 〈헬로우 고스트〉, 〈슬로우 비디오〉를 만든 감독이 쓴 첫 소설이라는 점, 그리고 곰탕 한 그릇을 찾기 위해 시간여행을 떠난다는 독특한 설정이 궁금증을 자극했습니다. 오늘은 줄거리와 등장인물, 그리고 ‘곰탕’이라는 소재가 상징하는 의미까지 제가 직접 읽고 느낀 감상을 바탕으로 정리해보려 합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

‘곰탕의 맛을 배우기 위해 시간여행을 떠난다’는 설정 자체가 신선했습니다. 시간여행이라는 SF적 장치가 흔히 역사를 바꾸거나 거대한 재난을 막는 목적으로 쓰이는 데 비해, 이 소설은 그 거창한 장치를 고작 한 그릇의 음식 맛을 되찾기 위해 사용한다는 점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또한 영화감독이 쓴 첫 장편소설이 이렇게까지 큰 대중적 반응을 얻었다는 점도 궁금했습니다. 영상을 만들던 사람의 이야기 감각이 소설이라는 형식 안에서는 어떻게 드러날지, 그리고 반전을 거듭한다는 이 소설의 전개가 실제로 얼마나 몰입감 있게 다가올지 확인해보고 싶어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간략한 줄거리

배경은 몇 차례의 쓰나미를 겪은 2063년의 부산입니다. 이 미래의 부산은 안전한 고지대에 사는 윗동네와, 언제 또 다시 쓰나미가 덮칠지 모르는 저지대의 아랫동네로 극명하게 나뉘어 있습니다. 아랫동네의 한 곰탕집에서 주방보조로 일하는 마흔 중반의 이우환은, 어린 시절 반은 고아원에서 반은 식당에서 자라며 가족 없이 살아온 인물입니다. 그가 일하는 곰탕집의 사장님은 늘 예전, 그러니까 2019년 부산에서 맛봤던 진짜 곰탕의 깊은 맛을 그리워합니다. 미래에는 소고기가 귀해져 쥐처럼 생긴 동물로 곰탕을 끓이는데, 그 맛이 사장님의 기억 속 맛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장님은 우환에게 위험한 제안을 건넵니다. 목숨을 걸고 과거, 2019년의 부산으로 시간여행을 떠나 진짜 곰탕의 비법을 배워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간여행은 결코 안전하지 않습니다. 함께 배를 타고 떠난 열세 명 중 열한 명이 목숨을 잃고, 오직 우환과 또 다른 목적을 품고 온 여성 이화영만이 2019년 부산에 무사히 도착합니다.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상처를 안고 살아온 우환에게는, 애초에 이 여행에서 목숨을 잃는다 해도 크게 아까울 게 없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도착한 2019년 부산에서, 우환은 사장님이 일러준 주소를 찾아가며 곰탕의 비법을 좇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는 뜻밖에도 자신의 부모님과 이름이 똑같은 고등학생 커플을 마주치게 됩니다. 우환의 도착과 거의 동시에, 평온하던 2019년의 부산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연쇄살인 사건으로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시간 속에서, 우환은 곰탕의 비밀뿐 아니라 자신의 출생과 얽힌 예상치 못한 진실들, 그리고 이 살인 사건의 배후에 얽힌 비밀들을 하나씩 알아가게 됩니다.

주요 등장인물 정리

  • 이우환 : 이 소설의 주인공. 2063년 부산의 곰탕집에서 일하는 고아 출신 남성으로, 진짜 곰탕의 비법을 배우기 위해 목숨을 걸고 20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납니다.
  • 이화영 : 우환과 함께 시간여행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인물. 곰탕이 아니라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목적으로 과거로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이야기에 긴장감을 더합니다.
  • 곰탕집 사장님 : 우환을 시간여행으로 보내는 인물. 2019년 부산에서 맛봤던 곰탕의 맛을 오랫동안 그리워하며, 그 맛을 되찾고자 하는 간절함이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이 됩니다.
  • 부모님과 이름이 같은 고등학생 커플 : 우환이 2019년 부산에서 마주치는 인물들로, 그의 출생과 관련된 비밀을 풀어가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핵심 주제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만들어내는 극단적 행동

이 소설의 가장 근본적인 축은, 사소해 보이는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실제로는 사람을 목숨을 건 선택으로까지 이끌 수 있다는 통찰입니다. 곰탕 한 그릇의 맛을 되찾겠다는 소망이, 결국 여러 사람의 목숨을 건 시간여행이라는 극단적인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이건 마치 작은 불씨 하나가 마른 들판 전체를 태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처음의 불씨는 그저 옛 맛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소박한 감정이었을 뿐인데, 그 감정이 켜켜이 쌓이고 응축되면서 결국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나갑니다. 이 소설을 감수한 이준익 감독이 언급했듯, 이 작품은 결국 한 인간이 가진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어떤 일까지 감행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이 무엇인지를 되묻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그리움을 무해하고 감상적인 감정으로만 생각하지만, 이 소설은 그 감정이 때로는 얼마나 위험하고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는지를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보여줍니다.

계급으로 나뉜 미래, 그리고 시간여행이라는 특권

이 소설이 그리는 2063년의 부산은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명확히 계급이 갈린 사회입니다. 그리고 시간여행이라는 첨단 기술은, 이 계급 구조 안에서 상류층이 하류층에게 위험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활용됩니다.

이는 마치 위험한 광산 작업을 안전한 사무실에 앉은 사람이 아니라, 생계가 급한 사람에게 맡기는 구조와 비슷합니다. 시간여행이라는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지만, 그것이 누구의 몸을 위험에 내던지는 방식으로 쓰이는지는 철저히 계급에 따라 갈립니다. 윗동네 사람들은 안전한 곳에 머무른 채 그리운 과거의 산물—이 소설에서는 곰탕의 맛—만을 편리하게 배달받고자 하고, 그 위험은 고스란히 아랫동네의, 잃을 것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들에게 전가됩니다. 이 소설이 SF적 상상력을 단순한 오락적 장치로만 소비하지 않고, 그 기술이 실제로 사회에서 어떻게 불균등하게 작동할지를 함께 그려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특징

감독 출신 작가의 속도감 있는 연출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속도감입니다. 영화감독으로서의 경력이 소설에도 고스란히 묻어나는데, 장면 전환이 빠르고 긴장감을 유지하는 리듬이 마치 스릴러 영화의 시나리오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장르를 넘나드는 혼합적 구성

이 소설은 SF, 스릴러, 미스터리, 그리고 가족 서사까지 여러 장르적 요소를 한 그릇에 담아냅니다. 시간여행이라는 SF적 설정 위에 연쇄살인이라는 스릴러적 사건이 얹히고, 그 아래에는 출생의 비밀이라는 오래된 가족 서사의 문법이 깔려 있습니다. 이 다양한 장르가 뒤섞이면서도 이야기의 중심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 이 소설의 큰 강점입니다.


해석 —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 ‘곰탕’이라는 소재

단일하지 않은 맛으로서의 은유

‘곰탕’이라는 제목 자체가 이 소설의 다층적인 성격을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누구나 곰탕이 어떤 음식인지는 알지만, 그 맛이 집집마다, 지역마다 미묘하게 다르듯, 이 소설 역시 범죄, 스릴러, 시간여행이라는 여러 재료를 한데 우려낸 복합적인 이야기입니다. 하나의 장르로 규정되지 않는 이 소설의 정체성을, 제목이 이미 예고하고 있는 셈입니다.

오래 끓여야 우러나는 진실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곰탕이라는 음식이 오랜 시간 뼈를 우려내야 비로소 깊은 맛이 나는 음식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합니다. 이 소설 속 진실들—우환의 출생의 비밀, 연쇄살인의 배후, 화영이 정말로 원했던 것—역시 짧은 순간에 드러나지 않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우러나듯 밝혀집니다. 즉각적인 정답 대신 오랜 시간의 축적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진실이라는 점에서, 곰탕이라는 소재는 이 소설의 서사 구조 자체를 은유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잃어버린 고향의 맛이라는 보편적 정서

세 번째 관점에서 보면, 이 소설이 그리는 ‘옛날 그 맛’에 대한 갈망은 특정 인물만의 특별한 감정이 아니라 보편적인 향수를 건드립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 지금은 재현할 수 없는 그 특유의 맛을 그리워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 소설은 그 지극히 일상적인 그리움을 극단적인 SF적 설정으로 확장시킴으로써, 오히려 그 감정의 크기를 독자들에게 실감 나게 전달합니다.

기술 발전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은유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해결되지 않는 인간의 근원적인 결핍을 보여주는 이야기로도 읽힙니다. 2063년의 사람들은 시간여행이라는 놀라운 기술을 손에 넣었지만, 정작 그 기술로 되찾고 싶어 하는 건 첨단의 무언가가 아니라 지극히 소박한 한 그릇의 음식 맛입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이 진짜 그리워하는 건 결국 사람의 손맛, 사람의 정서라는 사실을 이 소설은 은근히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이 작품 전체를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사소해 보이는 그리움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끄는 힘이며, 그 그리움의 진짜 실체는 시간을 들여야만 비로소 온전히 드러난다”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환은 곰탕의 맛을 되찾겠다는 소박한 목표로 시작했지만, 그 여정 끝에서 마주하는 건 자신의 존재 자체에 얽힌 훨씬 더 크고 근본적인 진실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작은 그리움이 결국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되짚어보게 만드는 여정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냅니다.


정리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어떤 맛이나 기억을 그리워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환이 목숨을 걸면서까지 곰탕의 비법을 찾아 나서는 그 절박함이 낯설지 않게 다가올 것입니다.

이 소설은 무거운 사회적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빠른 전개와 반전을 통해 읽는 재미를 우선하는 작품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이야기 아래에는 계급, 그리움, 가족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들을 함께 심어두고 있어, 오락성과 사유의 깊이를 동시에 잡고 싶은 독자에게 잘 맞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과 감상평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 소설이 시간여행이라는 익숙한 SF 소재를, 이렇게까지 사소하고 개인적인 동기와 결합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였습니다. 역사를 바꾸거나 재난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한 그릇의 음식 맛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설정이 처음엔 다소 엉뚱하게 느껴졌는데, 읽어갈수록 그 사소함이야말로 이 소설의 진짜 힘이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최근 뉴스에서 자주 접했던 기후 위기와 해수면 상승에 대한 보도들도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몇 차례의 쓰나미로 도시가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갈린다는 이 소설의 설정이,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이상기후로 인한 해안 도시 침수 피해가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들과 겹쳐 보였습니다. 소설 속 미래가 마냥 먼 상상이 아니라, 지금 이 시점에서도 충분히 현실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면서 오싹함이 더해졌습니다. 기후 재난이 심화될수록 그 피해와 위험이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에게 더 크게 전가된다는 점도, 이 소설 속 아랫동네 사람들이 감당해야 했던 위험한 시간여행과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저 역시 어릴 적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음식의 맛을 지금은 도무지 재현할 수 없다는 아쉬움을 종종 느끼곤 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며 그 그리움이 얼마나 강렬한 감정인지 새삼 실감했습니다. 물론 저는 시간여행까지 갈 마음은 없지만, 만약 정말 그런 기술이 있다면 딱 한 번쯤은 그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다는 상상을 잠깐 해보게 되는, 그런 여운이 남는 소설이었습니다.


이 책 다음에 읽으면 좋은 책

  • 《곰탕 2: 열두 명이 사라진 밤》(김영탁) : 같은 작가의 후속작으로, 1권에서 이어지는 사건의 전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작별인사》(김영하) : 기술이 발전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인간다움을 되묻는다는 점에서, 함께 읽으면 흥미로운 비교가 됩니다.
  • 《살인자의 기억법》(김영하) : 미스터리와 반전을 활용한 서사라는 점에서, 비슷한 긴장감을 즐기고 싶은 분께 추천합니다.

마치며

《곰탕》은 곰탕 한 그릇의 맛을 되찾기 위해 시작된 위험한 시간여행을 통해,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인간을 얼마나 멀리까지 데려갈 수 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소설입니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어떤 맛이나 기억이 문득 사무치게 그리워졌던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이 소설이 건네는 이야기에 푹 빠져드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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